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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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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3-08-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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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를 잡겠습니다. 동해로 가서 고래를 잡겠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아주 멋진 고래가 있습니다

 

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는 1970년대 한국 대학가의 풍속도와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린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젊은이들의 방황이라는 표현은 왜 나왔을까? 먼저 이 영화가 제작된 1975년은 대통령 긴급조치 9가 발표되었다.

 

긴급조치란 1972년 개헌된 제4공화국 헌법(유신헌법)에 규정되어 있던, 헌법적 효력을 가진 특별조치다.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는 이 조치를 발동함으로써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고 영구집권의 발판을 만든 것이다.

 

특히 이는 역대 대한민국 헌법 가운데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을 위임했던 긴급권으로 총 9차례 공포되었다. 그리고 1980년에 겨우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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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인 고래사냥’ ‘왜 불러도 큰 인기

 

1975년에 발표된 긴급조치 9호의 내용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를 금하고, 이어 집회·시위 또는 신문, 방송, 통신 등 공중전파 수단이나 문서, 도화, 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도 금했다.

 

그리고 학교 당국의 지도, 감독 하에 행하는 수업, 연구 또는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았거나 기타 예외적 비정치적 활동을 제외한 학생의 집회·시위 또는 정치 관여 행위도 금지 시켰다.

 

이렇듯 숨 막히게 돌아가는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 최인호 원작, 하길종(1941~1979)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련한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화천공사 제작, 윤문섭, 하재영, 이영옥 출연의 이 영화는 1970년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좌절을 그린 영화로 답답한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낭만적이고 애상적으로 그려냈다.

 

이 영화 3분의 1은 검열과정에서 사라졌고 지금도 그 3분의 1은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영화에 삽입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송창식의 고래사냥왜 불러1980년대 중반까지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이 영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윤문섭)는 미팅에서 영자(이영옥)라는 불문과 여대생을 만나 사귀게 된다.

 

하지만 영자는 병태가 가난하고 전망도 없다는 이유로 절교를 선언한다. 그리고 부잣집 외아들인 병태의 친구 영철(하재영)은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생활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전국적으로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진 막막한 상황에서 그들은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술만 마시면 동해바다로 고래사냥을 가고 싶다던 영철은 어느 날 정말 동해바다로 떠나 자살을 하고, 병태는 군대를 선택한다.

 

병태를 태운 입영열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영자가 나타나 열차의 창문에 매달린 채 병태에게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입맞춤 하려는 영자를 도와주는 헌병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 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여기에서 고래란 어떤 의미?

 

여기에서 하길종과 최인호가 그렇게 그리고자 했던 고래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972년 박정희 정권은 행정·입법·사법의 3권이 모두 대통령에게 집중된 절대적 대통령제로 1인 영구 집권을 위해 10월 유신을 발표했다.

 

그리고 긴급 조치 1호에서 9호를 발동하면서 개헌 논의 일체를 금지하고, 반정부 세력에 대한 정치 활동,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1973년에는 일본에서 납치되는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하였고, 975년에는 고려대학교에 군대가 투입되었다. 이렇게 답답하고 숨 막힌 당시의 정치적 흐름이 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즉 자유와 자유, 그리고 또 자유라는 것이다.

 

당시 이 영화를 관람한 나육영 (60세 개인사업)씨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영자와 병태가 테니스를 치고 난후 파격적인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바로 둘이 함께 샤워하는 장면입니다.

 

물론 유리로 된 칸막이 한 개를 두고(당연히 지금도 안 되는) 샤워를 하는데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과연 천하의 최인호, 하길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성적 행동의 상징적 표현일 수 있겠지만 사회적 모순을 깨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바보들의 행진70년대 정서가 담긴 영화다. 답답한 영철은 고래라는 희망을 찾아 동해로 가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

 

그 사이 병태와 영자는 헤어진다. 영자는 병태에게 헤어짐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난 시집을 가야한다고 엄마가 말하는데 여자는 잘 팔릴 때 팔아야한다고, 병태아! 너는 나랑 동갑이 아니냐? 넌 좀 있음 군대도 가야하고 그럼 난 3년 동안 너만 기다려야 한다. 난 바겐세일 하기 싫어!”

 

그리고 마지막 장면.. 왕십리역에서 입영 열차를 타고 있는 병태. 그의 장발은 민머리로 변해 있었다. 시무룩한 표정의 병태. 그렇게 입영열차는 출발을 앞두고 있는데 저 끝에서 뛰어오는 발랄한 아기씨 한 명. 영자였다.

 

영자는 병태에게 밥 잘먹고 건강 잘 지키고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출발하는 입영열차에 키스를 한다. 유쾌한 마지막 화면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입맞춤을 도와주는 헌병도 그랬고.

 

70년대의 젊은이들은 캠퍼스, 가정 그리고 기존 사회의 벽과 부딪쳐가면서 고뇌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고뇌는 우직스러울 정도의 해학과 자조를 띄우면서도 밝은 내일을 위해 조금씩 나아갔다.

 

비록 슬픔과 아픔은 있었지만. 장발단속, 미팅, 입영, 집회의 자유, 통행금지 지금의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했던 당시의 일상들이 그렇게도 서러웠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어 이율배반적이지만 조금은 그립다.

 

특히 장발단속하던 경찰 아저씨. 바로 세상을 떠난 유명 코미디언 이기동씨도 그렇다.  

* 이관일 (시인,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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