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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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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3-07-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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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호와의 행복했던 마지막 기억들을 떠올린다. “제 입술은 조그마한 술잔이에요.” “그래, 정말 예쁜 술잔이로군.” 하늘에서 종이학이 떨어진다. 경아는 눈 위에 쓰러져 완전히 잠이 든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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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우울한 흑백의 이미지

 

1970년대 벌써 40여 전 이야기다. 언제나 위험하게 보이는 낡은 육교, 잿빛 서울의 하늘, 만원 버스. 그리고 무너진 와우 아파트, 대왕코너, 대연각호텔, 까만 교복의 학생들. 이렇듯 1970년대는 우울한 흑백의 이미지로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든 것은 유신이라는 광기어린 독재정치의 무서움이었다. 그 무서움으로 우리는 예술, 문화, 정치가 실종된 세상에서 살았다.

 

이렇듯 군부독재와 급격한 산업화라는 1970년대의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는 최인호라는 청년문화의 색다른 아이콘을 만나게 된다.

 

최인호의 문학세계는 1970년대에 진행된 산업화와 관련되어 본격소설과 대중소설이라는 양면성을 띄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도시적 감수성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그의 작가적 성향을 높인 것으로 1970, 1980년대 최고의 대중소설작가이면서 동시에 '통속적 소비문학'이라는 비평도 받았다.

 

어쨌든 1970년대는 새로운 가치관과 청년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현실 정치는 암울했다. 자유는 구속되어 있었고, 기성세대는 그동안 세월에서 그랬듯이 언제나 체념했지만 젊은 층은 달랐다.

 

그때 청바지와 장발, 통기타와 포크 음악이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이장희, 조동진,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같은 가수들이 등장, 직접 곡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젊은 층들은 포크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문화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시 나이 27세인 최인호가 자신과 비슷한 주인공 나이 26살의 경아를 만들어 별들의 고향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별들의 무덤에서 별들의 고향으로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최인호는 여러 문예지에 작품을 게재했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스물일곱 되던 1972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함으로써 최연소 신문연재 소설가로 기록되었다.

 

원래 제목은 별들의 무덤이었으나 신문사측에서 조간신문에 아침부터 무슨 무덤이냐며 일방적으로 고향으로 바꿔 버렸다고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소설은 그 후 최인호와 초등학교와 서울고등학교 동기이며 친구인 이장호 감독에 의해 1974년 영화로 만들어진다.

 

작가 최인호와 감독 이장호는 이 영화에서 힘들지만 스스로 결정한 험한 삶의 길을 가는 오경아라는 주인공을 안인숙을 정했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깨끗한 이미지의 안인숙에게는 좀 의외의 배역이었지만 이 영화는 그녀의 대표작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서울고 출신인 가수 이장희의 음악과 노래로 인하여 더더욱 오래 기억되고 있는 영화가 되었다.

 

이장희는 전유성과 함께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면서 이 영화의 주제가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한 소녀가 울고있네', '촛불을 켜세요', '나는 열 아홉살이예요' 같은 히트곡들을 남겼다.

 

소설가인 김낙봉(56)씨는 당시 최인호는 문단에서 각광받는 젊은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별들의 고향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당시의 유신 상황으로 보았을 때 그의 문학은 마땅히 사회를 개혁하는 중요한 사명감을 띠고 있다고 생각하던 많은 문인들과 대학생들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들은 별들의 고향을 호스티스 문학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하였고, 상업주의 소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습니다라며 비판의 소리도 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별들의 고향은 산업 사회 속에서의 성()개방 의식과 도시의 콘크리트 생활 속에서 젊은이들의 방황 의식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는지는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또 다른 반항이었고, 저항이었다.

 

윤시내의 목소리가 스크린에 가득 퍼진다

 

영화 별들의 고향1974년 화천공사 작품으로 관객 46만 명을 동원하여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안인숙, 신성일이 주연을 맡았다. 티 없이 맑은 처녀 경아(안인숙 분)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남자에게 버림을 받는다.

 

두 번째 남자인 이만준(윤일봉 분)의 후처로 들어가지만 그녀의 과거 때문에 버림받게 되고 세 번째 남자인 동혁(백일섭 분)에 의해 호스테스로 전락하게 된다.

 

호스테스 생활을 하다 네 번째 남자인 문호(신성일 분)를 만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경아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문호는 심한 알코올중독과 자학 증세가 심해져 더 이상 경아를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녀를 떠나게 된다.

 

문호가 떠나자 경아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끝내 눈 내리는 겨울 밤거리에서 생애를 마감한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문호는 떠나고, 경아는 혼자 왕대포집으로 들어간다. 낯선 남자를 만난다. ‘나는 19살이에요가 윤시내의 목소리로 스크린에 가득 퍼진다. 경아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또 다시 술집으로 돌아와 소주를 마신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선다.

 

난 그런 거 몰라요, 아무 것도 몰라요.

 

왠지 겁이 나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정말 몰라요. 들어보긴 했어요.

 

가슴이 떨려오네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난 지금 어려요. 열아홉 살인 걸요.

 

화장도 할 줄 몰라요. 사랑이란 처음이에요.

 

웬일인지 몰라요. 가까이 오지 말아요.

 

떨어져 얘기해요. 얼굴이 뜨거워지네요.

 

노래가 끝나면 끝없는 설원이 펼쳐진다. 경아는 혼자 눈밭 위를 걷는다. 수면제를 먹고, 물 대신 눈을 떠서 먹는다. 사랑의 테마가 흐른다.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지만 대지에는 새하얀 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녀는 문호와의 행복했던 마지막 기억들을 떠올린다. “제 입술은 조그마한 술잔이에요.” “그래, 정말 예쁜 술잔이로군.” 하늘에서 종이학이 떨어진다. 경아는 눈 위에 쓰러져 완전히 잠이 든다.

 

정확히 36년 전 영화다. 그동안 서울도 세월도 우리들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아직도 이런 경아가 있을까? 그래서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경아를 찾아본 것이다.  * 글 이관일(시인,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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