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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안내양들의 ‘없으면 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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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3-07-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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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요금도, 회수권도, 토큰도 없는 시절이지만 ‘차장 아가씨’들은 불과 2~30 여년전만해도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풍경들이었다.

 

고향의 동생 오빠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했던 이 땅의 딸들

 

곤색(일본어紺色이다. 우리말로는 감색이다. 하지만 일본말인 줄 알고도 표기한 것은 이렇게 해야 당시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바지, 머리에 핀으로 꽂은 빵떡모자 그리고 윗옷이나 바지에 돈 넣는 주머니가 여럿 있었고 버스 옆구리를 치면서 ‘오라이’ 하던 젊은 아가씨. 바로 버스차장들이었다.

 

그들은 술 취한 아저씨, 짓궂은 총각, 철없는 중고교생들의 온갖 장난을 다 받아주고, 또 운전수 아저씨 비위 맞춰가면서 악착같이 돈 벌어 고향의 동생 오빠 뒷바라지를 위해 일했던 차장아가씨들. 어쩌면 그들의 고생과 노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힘이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 손을 호호 불며, 구멍 난 장갑을 끼고 버스 앞문 뒷문에 서 있는 그들을 보고 당시 우리들은 ‘차순이’라고 부르며 놀리기도 했었다.

 

특히 1967년 서울 초등학생 버스요금(어쩌면 중학생도 마찬가지)이 5원인 시절. 그때는 버스를 탈 때 10원을 주고 거스름돈 5원을 내릴 때 받기도 했었는데 분명 5원을 주고 타고는 내릴 때 거스름 돈 달라고 떼를 쓰는 철없는 아이들, 그리고 늦은 밤 종점에 도착하면 차주들과 운전사들이 차장들의 요금을 ‘삥땅’(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할 돈의 일부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했을까 봐 몸수색을 하던 인권이 실종된 그 시절의 열악한 환경, 돈으로 버스비를 지불하던 시절이 회수권이라는 제도로 바뀌었는데 이 역시 차장들이 돈을 떼먹는다는 차주들의 로비에 의회 회수권 제도가 생겼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런 저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이 땅의 진정한 산업역군으로 큰 몫을 했었다.

 

1969년 서울 덕수중학교 2학년이었던 허필홍(57세 건축업)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제 기억으로는 그때 회수권이 나왔어요. 학교에서 50원인가 40원을 주면 회수권 10장이 이어진 것을 주었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10장으로 잘라 사용하지 않고 11장, 어떤 친구는 간도 크게 12장으로 잘라 차장들에게 슬쩍 건네고는 버스를 타다 걸리면 도로 내리고...... 지금 생각하면 우리들의 장난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이 듭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18시간, 잠자는 시간은 4~5시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버스차장이 여성으로 바뀐 것은 언제쯤일까? 1961년 초까지 버스 안내원은 남성의 직업이었다. 버스 차장을 남성에서 여성을 바꾸는 첫 시도는 1959년 2월에 시작된다.

 

그해 2월24일 ‘조선일보’를 보면 “24일 교통부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오는 4월 초하루부터 서울 시내는 운행하는 600대 가까운 시내버스의 차장을 모조리 여차장으로 간다”라는 기사가 있다.

 

그 이유는 “그동안 남자 차장들에 의하여 가끔 발생되는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없이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961년 6월17일 당시 박광옥 교통부 장관에 의해 여자 차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여자 안내양제도도 큰 시련을 맞는다. 그 이유는 버스 회사들이 안내양들에게 강요한 노동 여건이 너무 열악해 사회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1962년 11월 6일 ‘조선일보’를 보면 “서울 시내버스 26개 노선에 근무하는 안내양 213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버스 안내양 대부분은 18살 전후의 나이에, 지금의 초등학교인 국민학교를 나온 뒤 할 일이 없어 버스 안내양이 됐다”는 사연이 있고, 또 그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18시간이며, 하루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4~5시간, 식사시간은 1시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래서 여론의 직격탄을 맞은 버스회사들은 버스 안내양을 다시 남성으로 바꾸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아무튼 서울 시내버스의 마지막 버스차장들은 1989년 경기도 김포에서 광화문까지 운행하는 김포교통 소속 130번 안내양 38명이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차장들의 애환

 

이렇듯 당시 차장들의 이야기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그래서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바로 “영자의 전성시대‘가 그 첫 번째 영화였다.

 

1973년 소설가 조선작씨가 발표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부잣집 식모로 지내던 시골 처녀 영자가 주인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집을 뛰쳐나와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다 한쪽 팔을 잃고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하는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2년 뒤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 36만 명(1975년 2월11일 국도극장 개봉)을 불러 모으는 대박을 터뜨렸는데, 영화에서 영자가 만원 버스에서 굴러 떨어져 한쪽 팔을 잃은 뒤 받은 보상금(30만원)을 고스란히 고향으로 부치는 장면은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 번째 영화는 김수용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로 간 처녀‘였다. 1981년 12월 중앙극장 개봉작으로 유지인, 금보라, 이영옥, 김만, 한지일(한소룡), 트위스트 김, 홍성민, 위키리(이한필, 특별출연)등이 출연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제노조'로 이루어진 버스 안내양들이 극장의 간판을 떼는 등 격렬한 항의로 개봉이 되자마자 강제로 막을 내리게 된 비운의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부산 등 지방에서는 개봉도 못하고 사전 검열에서도 여러 부분이 훼손되어 버렸는데,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 '버스 안내양'의 애환을 다룬 작품으로 많은 화제가 되었었다.

 

실제로 있었던 어느 버스회사 안내양의 자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이 같은 버스회사들의 강력한 항의로 그만 상영중지 되고 말았다.

 

군대 휴가의 마지막 날처럼 조금은 우울한 30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

 

필자가 어렵게 찾은 당시 충청도 P읍에서 올라와 차장 일을 했던 조모씨(가명 61세)는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종점에 도착하면 이른바 ‘삥땅’이라도 했을까 봐 몸수색 하는 차장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언니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회사 남자 직원과 운전기사들, 그리고 우리들을 사람 취급안 하는 승객들, 참으로 슬펐고 힘들었어요. 그러나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면 힘들었어도 참았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이야 외할머니가 되어 답십리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잘 생활하고 있지만 그 당시 이야기는 조금도 하기 싫다고 했다. 아무튼 지금이야 회수권도, 토큰도 없는 시절이지만 불과 2~30 여년전만해도 우리들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풍경들이었다. 차장이라는 이미지가..........

 

1977년 필자는 영사운드의 '등불'을 자주 틀어 주던 명륜동의 막걸리집 '상용이네 집'에서 취해 남가좌동과 면목동을 운행하던 205번 버스를 타면 어느새 동아방송의 ‘밤의 플렛트 홈’에서는 카펜터즈의 'Yesterday once more'가 흘러나온다.

 

그러면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청한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필자와 같은 또래의 차장 아가씨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군대 휴가의 마지막 날처럼 조금은 우울한 30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글, 이관일 (시인,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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