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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다방과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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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3-08-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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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음악다방이라는 문화는 정치적이던 문화적이던 한때 우리들에게 익숙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추억으로만 남는 기억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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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음악다방

 

1895년 을미사변으로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피신해 있을 때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여기서 고종의 시중을 들던 독일계 여성 '손탁'이 중구 정동 29번지의 왕실 소유 땅 184평을 하사 받아 손탁호텔을 세우고 1902년 이곳에 '정동구락부'를 열었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판 다방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방은 지난 1952년에 문을 연 전주의 삼양다방과 경상남도 진해의 흑백다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60~70년대에 들어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었다. 그 와중에 음악다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50년대 말 명동에 위치한 음악다방 은하수’, ‘명보다방’, ‘돌체등은 젊은이들을 위한 자리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디쉐네’, ‘메트로’, ‘시보네등도 명소로 자리 잡아갔다. 이 시기를 통하여 최동욱, 이종환, 김인권, 박광희, 원종관, 조용호, 이백천, 이선권, 박원웅 등이 DJ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후일 방송사가 생기면서 이들은 각각 프로듀서나 방송 DJ로 자리를 옮겼다.

 

그만큼 그들의 인기가 대단했다는 증거다. 어쨌든 이런 음악다방을 중심으로 커피는 젊은이들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특히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LP, 장발, 미니스커트, 고고, 디스코, 팝송과 더불어 커피는 더더욱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서울의 수많았던 음악다방들

 

70~80년대 음악다방을 한 번 살펴보자. 1970년대 초 커피 값은 60원이었다. 아마 자장면 가격도 이 정도였을 것이다.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 곳 없고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대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다. 장발이 유행하던 그 시절, 뒷주머니에 도끼빗을 넣고 다니며 거울 앞에서 뽐내며 머리를 빗는 DJ의 모습 또한 참 익숙한 풍경이었다.

 

1970년대의 대표적인 음악다방으로는 종로 1가의 희다방’, ‘향원동숭동 대학로에는 슈만과 클라라’, ‘학림다방’, ‘참스다방’, ‘대학다방이 있었다.

 

1980년대 대표적인 음악다방은 종로의 무아다방’, ‘청궁다방’, ‘엘파소’, ‘호다방’, ‘양지다방’, ‘성전다방’, ‘돌체다방’, ‘약속다방’, ‘솔다방’, ‘희다방’, ‘돌고래다방’, ‘원앙다방’, ‘타임다방’, ‘ ‘세시봉다방’, ‘국일다방’, ‘초우다방’, ‘황제다방그리고 명동, 을지로에는 꽃다방’, ‘호수다방’, ‘청자다방’, ‘설파다방’, 가로등다방‘, ’영화다방‘, 참피온다방’, ‘카네기다방등이 있었다.

 

서대문, 신촌의 독수리다방’, ‘빌보드’, ‘파리다방’, ‘상록수다방’, ‘성지다방’, ‘참피온다방’, ‘노라노다방’, ‘타임다방고대 앞에는 보성다방’, ‘서브웨이경희대 입구에는 궁다방’, ‘상원다방신당동의 너와나’, ‘주희다방화양리의 매킨토시’, ‘타임다방이 있었고 동대문인근에는 못잊어다방’, ‘돌체다방’, ‘선구자다방’, ‘수산다방’, ‘청자다방’, ‘산울림’, ‘금성다방’, 동궁다방‘, ’역마차‘, ’청춘스케치등이 있었고, 청량리에는 남지다방’, ‘지하철다방’, ‘동산다방왕십리에는 축제다방’, ‘돌체다방’, ‘약속다방’, ‘불새다방영등포 지역에는 꽃샘다방’, ‘약속다방’, ‘종점다방그리고 강남 신사동에는 영일다방’, ‘타임다방’, ‘로마의 휴일등이 있었다.

 

그들이 여기에 모이는 이유

 

그렇다면 이런 음악다방을 출입했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무슨 사고를 가지고 있었을까?

 

중견화가 서응원(63)씨는 “1970년대 자본주의 성장으로 대한민국은 급속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정치를 비롯한 문화 예술은 여전히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독재정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밑으로부터의 저항은 끊임없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면 사랑일변도의 가요 가사가 어딘지 모르게 변하고, 화가들의 그림이 그렇고 시인과 소설가들의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지배자의 표현으로는 이들이 저속, 저질로 보였지만, 아무튼 거대한 권력적 자본주의의 수레바퀴에 매몰되어 있는 실정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었습니다라고 음악다방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밑으로부터의 작은 반란이라는 것이다.

 

 

중앙대학교 74학번인 김효영(57)씨는 당시 대학로의 슈만과 클라라라는 음악다방을 자주 들렀는데 그 이유는 우선 사회가 너무 경직되어있었어요. 이른바 386세대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저희 선배들은 그래도 미미하지만 반항을 했어요. 그곳이 정치이던 사회이던, 그러나 우리세대는 마냥 침묵만 강요받았어요. 우리 역시 그런 것에 익숙해 있었고. 군대, 이성, 장래 모든 것들이 그랬어요. 그렇다고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은 최소한 나와는 너무 생경스러운 곳이고, 그래서 낮에 가장 가기 쉽고 내가 즐기는 음악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래서 자주 그런 곳을 찾은 것 같습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이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음악다방 나름대로의 낭만도 있었고 러브스토리도 있었다. 그 중심에는 DJ가 있었다.

 

DJ의 어원은 Disk(음반)Jockey(말을 타는 기수)의 약자로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수처럼 Disk(음반)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DJ는 뮤직박스 안에서 날씨와 계절, 분위기에 맞는 선곡을 하고 음악적인 주제와 화제의 멘트를 하는데, 주로 고객의 신청곡과 사연들을 위주로 방송을 했다.

 

가난한 연인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만의 사연이 담긴 음악을 듣고, 혹은 군대 영장을 받은 젊은이들은 꺼이꺼이쓰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서 애창곡을 신청했고, 실연한 여대생은 마냥 눈물지우며 음악을 신청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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