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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담합’ 유혹에 소비자들만 뿔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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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10-05-17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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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단총)는 국내 액화석유가스(LPG) 공급업체 6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업체들이 장기간 가격담합을 통해 어마어마한 부당이득을 취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LPG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입었다는 이유에서다.

장단총은 이번에 1차로 114명의 원고단을 꾸려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올해 말까지 10여만 명으로 예상되는 원고단 모집을 계속해 소비자들의 권리를 찾고 부당이득을 챙긴 기업들에겐 강한 경고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택시업계와 시민단체에서도 똑같은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잔뜩 뿔난 이유는 간단하다. ‘담합’이라는 불공정 행위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12월 E1, SK가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6개 LPG 공급업체가 6년 여간 가격담합을 통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며 형사고발과 과징금 6693억원을 부과했었다.
장단총 관계자는 “그 사실(LPG가격담합)을 알고 가슴이 떨리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었다. 장애인 차량에 지원되던 LPG 세금인상분 지원사업도 폐지되는 마당에 어떻게 소비자들을 이런 식으로 우롱할 수 있느냐”며 격앙된 어조로 비판했다.

■ 달콤한 유혹 뒤엔 소비자피해, 시장경제 작동 방해

기업들에게 담합(카르텔)은 달콤한 유혹이다. 동종 업체들끼리 경쟁을 하지 않고 가격을 공동 인상한다면 업체들은 조용히 이윤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담합이 적발돼 어마어마한 과징금과 형사처벌을 각오해야 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고 여기는 게 현실이다.

공정위의 담합 제재건수(경고 이상의 시정조처)는 지난 2007년 44건에서 2008년 65건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제재를 받은 LPG·음료수·스펀지·통신선·레미콘·치약·선물세트 등에는 주요 그룹 계열사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들도 포함돼 있어, 과거 독과점 지위에 있는 대기업들 위주의 담합을 벗어나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담합의 달콤한 유혹 이면에는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첫 번째가 소비자들의 피해이다. 업체들의 담합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또 일부 소비자들은 높은 가격 때문에 구매량을 축소하거나 구매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이 같은 가격 상승과 소비자 후생 감소는 경쟁과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기본 작동 원리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이나 독과점 횡포, 내부거래 등 다른 불공정거래 행위보다 담합을 더 나쁜 행위로 인식하고 담합 근절에 경쟁법 집행의 1순위를 부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경제체제의 원조격인 유럽연합 국가들과 미국 등 선진국들은 담합이라는 불공정행위에 대한 재제가 더욱 강하다. 미국 법원들은 담합을 경쟁정책의 공적 1호(Supreme Evil)로 규정하고 있고, 담합행위는 중죄로 취급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에서도 담합을 가장 죄질이 나쁜 경쟁법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담합의 심각성에 대해 둔감하다. 공정위 조사결과 LPG 공급업체들은 가격 담당자들이 2003년부터 6년 동안 매달 전화나 모임을 통해 상대방 가격을 미리 확인하거나 변동폭을 협의한 뒤 판매가를 비슷하게 결정했다. 해당 업체들은 ‘물증이 없다’며 억울해 하지만, ‘경쟁사의 임직원과 만나는 것 조차도 담합의 중요한 증거’가 되며, ‘가격이나 거래조건, 물량 등에 관한 단순한 정보교환이나 접촉도 의심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외국 경쟁당국의 잣대를 들이대면 백발백중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 공들여 쌓은 기업·국가 이미지 실추…담합 인식 바꿔야

담합의 피해는 국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카르텔 혐의로 외국에서 다수가 적발됐다. 지난 2005년 이후에만 1조700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 받았고 상당수의 임직원이 외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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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시각은 소비자에게 피해만 줄뿐 아무런 경제적 편익도 창출하지 않는 해악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EU 등 주요 경쟁당국이 공유하고 있는 확고한 믿음이며, 이들 국가에 의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 9위의 수출대국이, 127개 품목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기업이 담합으로 인한 법적 재제를 받는 것이 지속된다면, 기업이미지 실추는 물론, 국가신인도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이나 EU 등 소비자행동이 강한 국가에서는 담합행위를 한 기업을 상대로 소비자들이 벌금보다 더 샌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제기한다. 기업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담합은 ‘공공의 적’이며 ‘중범죄’라는 확실한 시그널을 주겠다는 게 이들 국가들의 방침인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김정기 국제카르텔과장은 “최근 외국으로부터 국제담합 혐의로 제재를 받은 국내 수출기업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며 “담합은 적발 기업의 법적 제재로 인한 금전적 손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기업이미지는 물론, 한국에 대한 국가신인도마저 훼손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호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1일 ‘공정거래의 날’ 기념식에서 “시장의 규칙을 무시하고 공정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에 대해선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다”며 “시장의 암(癌)적인 존재인 카르텔을 근절할 것”이라고 강하게 밝혔다.

공정위는 정 위원장이 2008년 7월 취임한 이후 주요 생활용품 가격에 대한 업계의 카르텔을 막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담합에 의한 시장경제 질서 붕괴를 막고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이며, 최근 외국에서 강화되고 있는 카르텔 제재에 취약한 한국 기업들이 경각심을 담합에 대한 인식을 시급히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다.

고준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손쉬운 방법으로 경쟁하지 않고 쉽게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담합에 대한 유혹은 강하다”며 “최근들어 담합에 대한 국내외 경쟁당국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대기업 위주로 담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것이 전체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담합은 소비자 선택권에 대한 침해’라는 인식을 가지고 담합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보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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