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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너머 주막 막걸리 생각에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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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09-09-28 08:10

본문

1.

길에도 생명이 있다. 사람이나 동식물처럼 단명하거나 장수한다. 생겨난 지 몇 해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길이 있는가 하면, 더 넓고 반듯한 길이 새로 생긴 뒤에도 여전히 제 구실을 다하는 길도 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영동지방의 관문 구실을 해온 대관령 옛길은 생명력 강한 길로 첫손에 꼽힐 만하다.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한 길은 단순한 교통로가 아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역사유적이나 다름없다.

대관령 옛길은 수백년 세월동안 이 길을 오간 숱한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졌다. U자형 협곡처럼 파인 산길과 뿌리를 드러낸 고목을 군데군데서 접할 수 있다.
대관령 옛길은 수백년 세월동안 이 길을 오간 숱한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졌다. U자형 협곡처럼 파인 산길과 뿌리를 드러낸 고목을 군데군데서 접할 수 있다.

해발 8백32미터의 대관령을 통과하는 길은 현재 세 갈래다. 아흔아홉 구비의 구불구불한 대관령 옛길과 이제 456번 지방도로 변경된 옛 영동고속도로, 그리고 33개 교량과 7개 터널로 이어진 영동고속도로의 신구간이 백두대간 준령인 대관령을 가로지른다. 그 길들을 통해 하루에도 수천수만 대의 차량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대관령을 넘나든다. 하지만 대관령을 수시로 넘나드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곳의 울창한 숲 속에 국사성황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거나, 운치 그윽한 대관령 옛길을 직접 걸어본 이는 많지 않다.

대관령 옛길의 전 구간을 섭렵한 것은 필자도 이번이 처음이다. 대관령국사성황제를 구경한 뒤에 국사성황신을 강릉 시내로 모시는 행차 인파에 섞여 대관령 옛길의 일부 구간을 걸어본 일은 두 차례 있었다. 하지만 성대한 축제였던 행차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이 옛길의 독특한 매력과 운치는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대관령 옛길은 국사성황당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강릉 쪽의 시점인 대관령박물관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초행인 경우에는 아무래도 대관령 정상에서 강릉으로 내려가는 길이 훨씬 수월하고 마음 편하다.

대관령 옛 길가에 자리잡은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
대관령 옛 길가에 자리잡은 무덤을 지키는 문인석.
옛 영동고속도로의 대관령휴게소에 차를 세워두고 1.3킬로미터쯤 걸으면 늘 무악(巫樂)이 그치지 않는 국사성황당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모든 성황신들의 지존(至尊)인 국사성황신이 머무는 곳인 데다 기도발이 좋기로 소문나 있어서 무속인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반정 오르면 강릉 시내·동해 바다 한눈에 펼쳐져

대관령 국사성황신은 통일신라 때 지금의 강릉시 구산면 학산리에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다. 강릉지역의 전설에 따르면, 범일국사는 임진왜란 당시 대관령의 나무들을 모두 군사로 둔갑시켜 왜군의 침입으로부터 강릉을 지켜냈다고 한다. 그래서 대관령 국사성황신에 대한 강릉 사람들의 믿음과 경외는 절대적이다. 2005년 11월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선정돼 세계적인 전통축제로 인정받은 강릉 단오제의 주신(主神)도 바로 이 국사성황신이다. 그리고 대관령의 울창한 참나무 숲에는 국사성황당뿐만 아니라 산신당도 자리 잡고 있다. 이 산신당에 모셔진 산신은 삼국통일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이라고 한다.

대관령 옛길은 국사성황당을 벗어나자마자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으로 들어선다. 키 작은 조릿대와 우람한 참나무가 혼재한 숲은 한낮에도 어둑해서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국사성황당에서 2백 미터쯤 오르면 백두대간 주능선에 이른다. 능선에는 삭막한 시멘트도로가 가로지르고, 길가에는 KT중계소의 철탑이 우뚝하다. 그 생경한 풍경을 애써 외면하며 다시 숲길로 내려섰다.

돌서낭도 군데군데… 금강소나무 숲길 운치 있어

대관령 옛 길
능선에서 옛 영동고속도로를 만나는 반정까지의 1.8킬로미터 구간은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오솔길이다. 봄철의 얼레지, 꿩의바람꽃, 피나물 등에서부터 가을철의 투구꽃, 구절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연이어 피고 지는 꽃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눈만 즐거운 게 아니다.

새소리며 바람 소리에 귀가 즐겁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느껴지는 부엽토의 푹신함에 발바닥이 편안하다. 갈 지(之)자 형태로 쉼 없이 구불거리는 이 길은 걷는다기보다도 두둥실 떠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쾌하고 기분 좋다. 반정으로 내려가는 길가에 세워진 한원진의 시비에도 “새가 다닐 험한 길은 하늘에 걸렸고 / 이 길을 가는 나도 반공중을 걷고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대관령 옛길은 두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될 만큼 넓다. 때로는 U자형의 협곡 같은 구간도 지난다. 큰 뿌리를 드러낸 채 위태롭게 서 있는 길가의 고목들도 적지 않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이 길을 오간 숱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처럼 오랜 내력이 또렷한 길을 구렁이 담 넘듯 슬그머니 돌고 돌다 보니 어느덧 반정이다.

반정은 강릉 구산과 평창 횡계 간을 잇는 대관령 옛길의 중간지점이다. 시야가 훤해서 강릉 시내와 동해 바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마음 편히 쉬기는 어렵다. 옛 영동고속도로를 오르내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의 소음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느긋하게 휴식하기에는 반정에서 1킬로미터 아래쪽에 위치한 쉼터가 제격이다. 그 쉼터가 아니어도 길을 걷는 동안 중간중간 나무벤치가 놓여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반정을 지나서 3백 미터쯤 내려온 길가에는 나지막한 돌담에 둘러싸인 ‘기관이병화유혜불망비(記官李秉華遺惠不忘碑)’가 있다. 지방의 하급관리였던 이병화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선 순조 24년(1824)에 인근 주민들과 장사꾼들이 합심해서 세웠다는 비석이다. 오랫동안 대관령의 중간쯤에는 주막이 없어서 생계를 위해 고개를 넘던 어흘리 주민과 장사꾼들이 겨울에 얼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병화는 1백 냥의 사재를 털어 반정에다 주막을 짓고 나그네에게 침식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대관령 옛길 중간 지점 ‘반정’서 한 땀 식히고

반정에서 1킬로미터 거리인 쉼터를 지나면서부터는 길의 기울기가 눈에 띄게 가팔라진다. 구절양장처럼 몹시 구불거리는 구간이 수시로 나타난다. 그래도 여전히 몸은 가뿐하고 발길은 날아갈 듯 가볍다. 조금 에돌더라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경사와 고도를 극복하려는 옛 사람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의 고단함을 덜기 위해 때로는 산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 성취를 빌며 돌 하나씩을 올려서 쌓은 ‘돌서낭’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대관령 옛길은 소나무 숲이 좋다. 어디나 흔한 소나무가 아니라 춘양목, 강송 등으로 불리는 금강소나무다. 때로는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로 가득 찬 숲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금강소나무숲을 지나고 작은 나무다리를 하나 건넌 뒤 10여 분쯤 걸으면 근래 복원된 주막에 당도한다. 전통 귀틀집으로 지어진 주막에는 숙소로도 활용할 수 있는 황토방도 있고,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쉴 만한 평상도 놓여 있다. 고소한 파전이나 도토리묵 한 그릇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저절로 생각나는 곳이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탓에 명실상부한 주막이 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주막에서 대관령 옛길이 끝나는 대관령박물관까지의 거리는 3킬로미터가량 된다. 계곡의 물길을 끼고 가는 길은 평지나 다름없이 수월하지만 길의 정취는 한결 떨어진다. 그래도 시원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덕에 여전히 기분은 상쾌하다.

노란 피나물꽃이 만발한 대관령 옛 길을 따라가는 국사성황신의 행차 모습.국사성황제는 매년 음력 4월 15일에 열린다.
노란 피나물꽃이 만발한 대관령 옛 길을 따라가는 국사성황신의 행차 모습.국사성황제는 매년 음력 4월 15일에 열린다.

주막에서 30분쯤 내려가면 하제민원 터에 당도한다. 펜션과 음식점, 우주선 모양의 화장실이 있는 이곳에서 흙길이 끝나고 시멘트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강릉 쪽에서 대관령 옛길을 오를 때에는 이곳까지 차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산길을 내려온 사람들에게 이 포장도로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길이다. 비포장 산길을 걷는 내내 편안했던 무릎과 발목이 갑자기 시큰거릴 만큼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날에 강릉 원님들이 부임할 때와 떠나갈 때에 울며 넘었다는 ‘원울이재’만 넘어서면 길의 종점인 대관령박물관이 지척이다. 이윽고 종점에 당도하자 안도감이나 후련함보다 훨씬 더 큰 아쉬움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 여행정보

숙박
대관령 옛길과 가까운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는 대관령옛길펜션(033-336-1026), 올리브하우스(033-335-3620) 등의 펜션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많다. 대관령 내리막길의 종점과 가까운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도 대관령노루귀펜션(033-655-6622), 상록수펜션(033-644-7188)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휴양림이자 솔숲과 계곡이 좋기로 이름난 국립대관령자연휴양림(033-644-8327)도 이용해볼 만하다.

맛집
인제 용대리와 함께 황태의 본고장으로 손꼽히는 평창 횡계리에는 황태회관(033-335-5795), 송천회관(033-335-5943) 등과 같이 유명한 황태요리 전문점들이 여럿 있다. 뽀얀 국물에다 솜처럼 부푼 황태살을 넣고 끓인 황태국은 술꾼들의 해장국으로도 좋다. 횡계리의 향토 별미 중 하나인 오삼(오징어+삼겹살)불고기는 납작식당(033-335-5477)과 횡계식당(033-335-5388)이 잘한다. 대관령 아랫마을인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위치한 초원쌈밥(생선구이쌈밥·033-641-9588), 옛카나리아(대구머리찜·033-641-9502)도 소문난 맛집이다.

가는길

가는길

승용차│영동고속도로 횡계나들목→구 영동고속도로(=456번 지방도)→옛 대관령휴게소(상행) ※ 옛 대관령휴게소 주차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대관령 옛길의 종점인 대관령박물관이나 어흘리에서 차를 주차해둔 옛 대관령휴게소로 다시 돌아오려면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횡계콜택시(033-335-6263)를 불러야 한다. 대관령박물관에서 옛 대관령휴게소까지 콜택시 요금은 약 2만원.

대중교통│서울의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횡계를 경유하는 강릉행 버스가 06:30~20:05 사이에 하루 24회 출발한다. 3시간 소요. 횡계에서 옛 대관령휴게소로 가는 노선버스는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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